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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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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천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08-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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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동사다

1. 현대 교회의 왜곡된 믿음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설교자들은 신앙의 본질을 ‘예수를 믿는다’는 문장으로 단순화해 가르친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치명적인 오해가 숨어 있다. 교인들에게 믿음이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한 인간—을 단순히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로 축소되었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부처상을 향해 절하거나, 이방 종교에서 신격화된 지도자를 숭배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왜곡은 기복신앙과 결탁하면서 더 깊은 문제를 낳았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복을 받는다’, ‘천국행 티켓이 보장된다’는 식의 보상 논리를 가르친다. 이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일종의 우상숭배적 행위로 전락시킨 결과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대상을 향한 맹목적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깨닫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내는 과정이다.

2. 번역의 오류와 오해의 뿌리

이 오해는 성경 번역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영어 성경의 “Believe in(on) Jesus”라는 구절에서 ‘in(on)’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헬라어 원문에서 ‘in’에 해당하는 ‘εἰς (eis)’ 또는 ‘ἐν (en)’은 단순한 ‘대상을 향한 신뢰’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머무른다’,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나 한글 성경은 이 표현을 ‘예수를 믿으라’로 번역하여, 믿음의 초점이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육신의 예수’ 그 자체로 왜곡되었다. 번역과정에 사탄이 개입한 결과다.
성경의 본래 의미는 ‘예수가 전해주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 안에 거하라’, ‘예수가 열어주신 길을 따라가라’는 초대이다. 그러나 번역의 미묘한 오도로 인해 교인들은 예수를 하나의 신격화된 인물로 믿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믿음의 본질적 차원—하나님과의 관계적 순종—이 사라지고, 믿음을 수동적 명사로 오해하는 문화가 교계 전체에 자리 잡았다.

3. 믿음의 본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순종

성경에서 ‘믿음’(πίστις, 피스티스)은 단순한 ‘동의’나 ‘인정’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신뢰를 삶으로 실천하는 순종’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인간에게 단순한 고백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개하고 나를 따르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수반된 행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점에서 믿음은 명사가 될 수 없다. 믿음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 움직이는 동사’이어야 한다. ‘나는 믿는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는 오늘도 그 약속을 따라 산다’는 행동이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 자신의 고향을 떠났고,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했다. 그의 믿음은 동사였다.

4.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 동사로 살아간 신앙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통해 믿음을 정의한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경고를 듣고 방주를 짓는 행동으로 믿음을 드러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아감으로 믿음을 증거했다. 라합은 정탐꾼을 숨기는 위험한 행동으로 믿음을 실천했다.
이들이 고백한 믿음은 결코 ‘명사’로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은 구체적인 행위, 선택, 그리고 삶의 방향성으로 나타났다. 야고보서 2장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 2:26)는 선언은, 믿음이란 결코 정적인 개념이 아니며 반드시 행동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5. 현대 교회가 놓친 믿음의 동사성

현대 교회는 믿음을 명사로 가르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문장이 너무나 단순화되어, 마치 신앙을 ‘티켓 구매’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예수라는 이름만 부르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식으로 오도하며, 믿음을 일종의 ‘교리적 동의’ 혹은 ‘종교적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믿음은 하루하루 순종하며, 자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능동적 행위를 말한다. 믿음은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믿음은 행동이다. 믿음은 순종이다. 믿음은 동사다.

6. 참된 믿음의 회복

우리는 ‘믿음’을 다시 동사로 되돌려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가 보여주신 길을 따른다’, ‘그분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이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나 입술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순종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조건 없는 ‘보증 수표’가 아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 용서와 겸손의 삶을 우리 안에서 ‘실천’하라는 초대이다. 따라서 ‘믿음’이란 단어를 고정된 명사로만 이해하는 것은, 신앙을 공허한 관념으로 전락시키는 가장 큰 위험이다.

결론

나는 다시 강조한다. 믿음은 동사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행동하는 의지이며, 예수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순종이다. 교회가 이 본질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신앙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껍데기뿐인 종교적 형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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